서울 동대문의 낡은 기와집, 1923년 겨울. 눈이 내리는 밤, 두 번째 장례식을 치르

는 집안. 아버지의 시신이 불에 타지 않도록 옷깃을 감싸며 숨을 멈춘 소년. 그의 이름

은 이병수.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이병수’가 아니다.

이제 그의 의식은 1945년 8월 15일 이후로 되돌아왔다. 그날, 일본군의 휘하에서

살아남은 남성 태자가, 산업화의 씨앗이 피어나는 1970년대 공장 위에서 ‘새로운 몸’

을 얻었다. 하지만 이 세계는 달라졌다. 전기망이 무너진 1945년, 전국의 전력망은

일제의 전쟁용 발전소로 연결되어 있었고, 누구도 전기를 쓸 수 없었다. 전기 사용은 사

형에 해당하는 '전력법'으로 제한되었으며, 비상용 발전기는 조선인에게

만 배급되는 '차등

자원'이었다.

그는 자신의 환생이 진짜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손에 들고 있던 전기 스탠드의 스위치를

누른다. 불이 켜졌다. 전력법이 붕괴된 순간, 그의 등장 자체가 전기 법칙을 깨뜨리는

행위였다. 전력 관리국의 검사관이 현장을 파고들었지만, 그는 이미 떠났다.

1974년, 광주. 제철공장의 라인 앞, 새벽 세시. 그는 공장 내부의 시스템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전기의 흐름이 인간의 호흡과 맞물려 있었다. 각각의 기계가 사람의 생명

력을 소모해 작동하고, 근로자의 폐활량이 전력 생산량과 정비례했다. 이 시스템은 ‘개발

’이라는 이름 아래, 인류의 생체 에너지를 추출하는 도구였다.

그는 지금까지 느꼈던 ‘복수’라는 감정을 버렸다. 지금은 개화기의 마지막 숨결을 받아들

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뒤엎는 일이어야 했다. 그는 공장 내부의 중앙 제어판에 손을

대고, 목숨을 걸고 자신의 뇌파를 전력망에 연결했다.

불이 꺼지고, 기계들이 멈췄다. 하지만 그는 살아있었다. 그리고 공장 전체의 전력망이

그의 의식과 연결되면서, 첫 번째 ‘개화’가 시작됐다.

이제 그는 스스로가 전력의 원천이자, 그 통로가 된다.

1976년, 서울의 빛이 처음으로 모든 거리를 채웠다. 전기공장의 기록에는 “작업자 1

1명, 급사”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시신은 전기 부족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라

, 뇌세포가 전력망에 강제로 연결되어 영구적으로 소멸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시스템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알았다. 그래서 그는 다음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1978년, 그는 공장에서 떠나, 농촌 지역의 전력망을 직접 설치했다. 전기의 흐름을

인간의 숨결이 아닌, 태양광과 풍력으로 재설계했다. 그의 이름은 더 이상 기록되지 않았

다. 다만, 그의 존재는 전력망의 설계 방식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마지막 순간, 그는 자신의 몸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의식은 1923년

의 어린 소년에게 돌아왔다. 이번엔, 그는 전기 없이도 빛을 만들 수 있었다.

1923년, 눈 내리는 밤. 소년의 손끝에서 작은 불꽃이 타올랐다.

그는 웃었다.

카타르시스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