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서울,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난 백작 김종현은 일제 강점기의 법적 지위를
잃고, 가문의 토지를 전부 몰수당했다. 그는 기도와 희망을 모두 땅속에 묻고, 숨겨진
유산을 찾는 대신 사라진 한옥 마당 아래에 깊은 지하 창고를 발견한다 — 거기엔 197
0년대 한국의 공장 설비와 원자재 수출 계약서가 묻혀 있었다.
레트로 시스템은 정확하게 작동했다: 1932년의 토지 가치는 1970년대의 생산력으로
재정의되며, 현재 존재하지 않는 기술과 상품 목록이 이 세계의 새로운 법칙이 되었다.
백작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한국산업공사’라는 명칭을 세우고, 1945년까지 남은 식민
지 법적 권한을 이용해 일본인 상사들의 제조소를 매입할 수 있게 됐다.
그의 재혼은 단순한 결혼이 아니었다. 빙의된 기억 속, 그는 1978년 인천공단에서 폭
죽처럼 터진 소방관의 딸이었던 여자와 결혼한 적이 있었다. 그녀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 그는 1932년 도쿄에서 만난 젊은 여성의 실명을 확인하며 첫 번째 계약결혼을 완료
했다.
설렘은 처음부터 끊임없이 짓눌렸다. 그녀의 손끝이 불꽃처럼 떨릴 때마다, 그는 1978
년 그날의 비극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녀의 얼굴에 번진 미소가 1978년 그녀의 마지막
웃음과 겹쳐졌다. 그 순간, 그는 계약결혼의 성립 조건이 '심장의 박동
9;이라는 것을
알았다 — 두 사람의 심장이 3초 이상 동조해야만 유효한 계약이 된다.
1943년 11월, 그는 일제의 통제 아래 있는 제철소를 인수할 수 있는 서류를 준비했
지만, 일본인 감시관이 갑자기 현장을 방문했다. 그때, 그의 입술이 떨리며 첫 번째 회
복된 기억이 꼬리를 물었다: 1978년 그녀가 울며 말했던 “너는 내 선택이 아니라,
네가 나를 선택해야 해”라는 말.
그는 침묵 속에서 3초를 기다렸다. 그녀의 심장이 뛰는 리듬이 그의 심장과 맞춰졌을 때
, 계약서 위에 빛나는 검은 인장이 나타났다.
1944년 초, 그는 서울에서 가장 큰 섬유공장을 확보했고, 이 공장의 기계들은 197
0년대의 설비를 기반으로 구동되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은 이제 ‘백작’이 아니라 ‘공업
의 혈맥’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레트로의 세계에서는 과거의 자본이 미래의 기술로 변형되었고, 백작
은 이제 누구보다도 빛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었다 — 그가 다시
살아온 이유는, 1978년 그녀가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눈앞에 선 그녀의 얼굴이, 1944년의 빛 아래서 다시 한번 웃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이 다 달라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걷던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가 선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