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8년 서울, 인공지능 기반의 신체 이식 시스템이 보급되던 해. 여성 정체성은 데이
터화되어 보관되었고, 복수의 생애를 빙의하는 법이 상용화되었다.
그녀는 첫 번째 빙의 대상으로 산업재벌의 딸이었던 1943년의 자신을 선택했다. 조선의
마지막 화교 가문, 김일영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일본인 경제 관리자의 아들과 강제 계
약결혼을 당했으며, 남편은 이미 사망한 지 두 달이 넘었다.
계약결혼의 유효기간은 6개월. 남편이 사망하면 합법적 유산 승계권을 포기해야 했다. 그
러나 그녀는 그 계약을 파혼했다.
정부가 부여한 ‘세대 복원 프로젝트’는 모든 빙의자에게 ‘국가 자산’으로서의 책임을 요
구했다. 그녀가 살았던 시절의 가족은 모두 재판에 회부되었고, 동네 한복판에서 무죄 판
결을 받은 남편의 시신이 불태워졌다.
파혼 결정 후, 그녀는 빙의 상태에서 몸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매일 밤 심장 리셋을
반복했다. 하지만 내면의 집착남주가 깨어났다 — 그녀의 첫 번째 남편, 김일영의 둘째
아들. 그는 오랜 시간 외로움에 짓눌려 있었고,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1943년 12월 25일, 도시는 전투 중이었다. 일본군이 북쪽으로 진격하고, 저항 세
력이 봉기했다. 그녀는 아버지의 은행 지하 저장고에서 증거를 찾았다. 계약결혼의 문서는
원래 유효하지 않았다. 남편이 사망한 날, 그녀가 제출한 서류는 허위였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도 파혼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지금까지 ‘김일영의 딸’이 아닌,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거짓 계약의 흔적을 공개했고, 일본인 관리자가 은행을 장악하려던 시도를 폭
로했다. 아버지는 체포되었지만, 그녀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신체를 다시 연결했다.
빙의 종료 직전, 그녀는 눈을 떴다. 현대 서울의 병원 침대 위. 의료 로봇이 말했다.
“빙의 성공률 73.8%. 감정 적합도: 불균형. 주의: 집착남주 패턴이 반복됩니다.
”
그녀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손끝으로 옷깃 위에 새겨진 글자를 만지작거렸.
‘내가 돌아왔어.’
카타르시스는 결코 회복이 아니라, 반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