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17층, 홍미나는 지갑 속 카드를 확인했다. '결혼증명

서'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이틀 전에 사라졌던 기억을 되찾았다. 빙의된 몸으로 다시

태어난 자신이 그랬다. 어릴 적 가출한 여자, 빌런의 아내로 살아야 했던 인물.

벽면에 붙은 액정 디스플레이가 깜빡이며 경고 문구를 띄웠다. "계약 기간 만료 3일 전

. 시스템 종료 시 영원한 추락 상태 진입." 홍미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시스템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갇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집을 나섰다. 서울역 7번 출구, 빌런의 첫 번째 죽음이 있었던 장소. 사람들은

그곳을 피하고 있었다. 그때, 발밑에서 땅이 갈라졌다. 시스템이 그녀를 끌어내렸다.

구조 대기 시간이 12시간 남았다.

홍미나는 빌런의 옛 부하들에게 접근했다. 그들의 목소리엔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빌런은

이미 죽었지만, 그의 영향력은 여전히 생존 중이었다. 그녀는 데이터를 찾아냈다. 빌런

의 마지막 날, 그는 자신을 살리려는 시도를 했었다.

그날 밤, 빌런의 집에서 홍미나는 빙의된 본체와의 연결을 시도했다. 시스템은 이를 막으

려 했지만, 그녀는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소화했다. 감정의 정제. 슬픔의 순환. 그 모

든 것을 흡수한 그녀는 시스템의 핵심을 꿰뚫었다.

벽면 디스플레이가 깜빡이며 '종료 완료'를 표시했다. 홍미나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더

이상 빙의되지 않았다. 시스템은 그녀를 해방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을

잃지 않은 채 살아남았다.